7月 16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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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 일을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선몽을 하는 경우를 나는 어려번 겪었다. 어떤 때는 시험 답안지를 거의 그대로 꾼 적도 있고, 특히 도무지 어려운 글자의 형태가 잡히지 않을 때에 정말 꿈속에서 자형을 얻어 내기도 많이 했다. 젊은 날, 처음 사업 자금을 구해 오다 그것을 몽땅 털려 버리고 크게 낭패를 당한 나머지 밤새껏 만취해 그대로 작업실에서 쓰러져 잤는데 그때 기미독립선언문 전문을 내가 내 나름대로의 분위기로 쓴 병풍이 펼쳐졌다. 그때부터 어떤 소명의식 처럼 기회 있을 때마다 기미독립선언문을 써 온 것이 크고 작게 200여 회나 되는 것 같은데 40여 년이 흘러갔다.
처음 얼마 동안은 개인 소장용으로 만들었지만 1980년대에 들면서 크게 액자 또는 병풍으로 제작해 공공기관 등에 명분이 있으면 기증해 왔다. 숭고한 민족정신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문화회의 광복절 기념 「예 아우름 전」의 정례 프로그램으로 넣어져 있다. 그리고 맨 처음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릴 때 뉴스화면에 북측 회담장에는 커다란 금강산 배경그림이 멋지게 나오는데 우리 서울회담장에는 그저 창문만 보여 순간 노산 선생님의 대하 시 「조국강산」을 대 병풍으로 제작해 남북회담사무국으로 보내자고 생각해 시작한 것이 이제 10여 회를 넘고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을 노래하니 나라사랑하는 마음이다.
올 해는 광복64주년이고 우리문화회 창립8주년을 맞으며 제7회 「예 아우름 전」을 작가초대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좀 더 나은 행사가 되도록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과연 잘 치룰 수 있을지 온갖 걱정을 다한다. 당장 기미독립선언문 대 병풍을 기증할 곳을 선정하는 문제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명분등 모든 것을 감안해 조심스레 타진했는데 처음으로 사양을 하니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명분이 있을 때마다 곳곳에 작품 기증을 많이 했지만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냥 주는 것이 얼마나 어색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제는 주저가 되기 때문이다.
과연 독립선언문은 어디로 가야하고 조국강산은 어떻게 고맙게 쓸 수 있을까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정말 훌륭한 작가들이 명예롭게 참여하는 좋은 행사로 만들어 가고 싶은 오직 순수한 의지와 열정으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하고자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가까운 분들께는 부담으로 느껴진다고도 하니 참 쓸쓸 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물러 설 수 없는 나는 이겨야 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용기를 내자.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는데 또 못할 것이 있겠나. 아무리 외로워도 또 한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 참고 또 참자.
2009. 7. 16
뉴스 매거진 인터뷰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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